엔도 슈사쿠

2009. 12. 18. 19:32 from 月光讀書


                                  여자들의 논리


대부분의 젊은 남자들은 술꾼이다. 퇴근길에 동료들과 으레 한잔씩 걸치게 마련이다.
남자들에게 있어서 사람들과의 만남은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신다.
종교를 이유로 술자리를 피하는 사람은 친구들에게 인기가 없다. 아니 싫어한다.
성서에는 "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라는 구절이 있다.
사랑을 위해서 친구의 술동무가 되어야 한다고 자기변명을 늘어놓는 이 불쌍한 남자들을
여성들은 이해해주기 바란다.
술을 마시고 집으로 살살 들어온다. 내심 미안하고 무섭다는 생각이든다.
아내도 물론 카톨릭신자이다.
그래서 남편이 귀가 할 때까지 잠도 자지 않고 기다리고 있다.
마치 성서속의 마르타(Martha)처럼
살금살금 문을 열고 들어가자, 조용히 "다녀오셨어요?"하고 인사를 한다.
때는 새벽2시. 그래도 그녀는 화를 내지 않는다. 왜냐하면 마르타이기 때문에.
"내일이 일요일인거 알죠? 8시 미사예요."
내가 벗어놓은 양복을 브러시로 털면서 얼굴도 쳐다보지 않고 조용히 말한다.
나는 괜히 찔리는 구석이 있어 이렇게 말한다.
"아니 친구녀석이 술한잔 하자는 바람에...거절을 했는데도 그 녀석이 사람들 앞에서
빈정거리잖아....'아 기독교신자들은 다르지. 우리처럼 나쁜놈들과는 상종도 하려 들지
않고 말이야.' 뭐 이런 소리까지 해대면서 말이야. 그래서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고."
"됐어요. 이게 어디 하루 이틀일인가요? 하지만 저는 당신이 취해서 교통사고라도 났나
싶어 잠도 못자고 걱정하고 있었단 말이예요."
"걱정은 내가 뭐 어린애인가?"
"하지만 당신은 내가 당신 걱정을 하고 있으리라고는 손톱만큼도 생각하지 않잖아요?"
이때부터 슬슬 여자들의 비약적인 논리가 전개되기 시작한다.
"당신은 그런 사람이예요. 내가 죽으면 산소에도 찾아오지 않을거라구요"
"그게 무슨 소리야, 당신!"
"아니요 안 올 거예요. 그래서 나는 어두컴컴한 땅속에서 혼자 있게 될 거예요. 바깥에서
바람이 쌩쌩불고 있는데 나는 땅밑에서 혼자 쓸쓸하게..."
마르타의 뺨에서 조용히 눈물이 흘러내린다.
그런데 도대체 남편이 술 마시고 늦게 들어온 일과 그녀가 죽어 묘지 밑에서 혼자 외롭게
누워 있는 것과는 무슨 연관이 있는것일까. 전혀 논리적인 연관성이 없다. 그런데 그녀의
아니 화가 났을때의 여성들의 논리는 마치 성난 말처럼 깡충깡충 뛴다. 그리고 남자는
"어, 어, 그게 아니고..."하는 동안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여자들의 논리 속으로 끌려 들어
가고만다.
"아니야 그런 일은 절대 없어. 꼭 묘지에 갈께!"
"일년에 한번은 와야해요. 적어도 한번은."
"일년에 세 번 갈께. 기일하고 부활절 때, 그리고 추석 때 말야.'
"만약 온다고 해도 묘지 앞에서 두손 모으고 서 있다가 1분후에 돌아갈 거면서."
새벽2시에 술 마시고 들어온 일이 묘지 참배 횟수 싸움으로 이어진다. 그녀는 아직 죽지도
않았는데. 그래서 내가 말한다.
"그렇지만 당신, 아직 죽은 게 아니잖아?"
"그럼, 당신은 내가 지금 당장 죽기라도 바란다는 소리예요?"
화난 여자가 무서운 이유는 상대로 하여금 이렇게 비약적인 논리에 빨려 들어가게 만들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이렇게 한없이 뜀박질하는 여자들의 논리를 도저히 따라잡기 힘들다.
그러나 여자들의 이런 비약적인 논리를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고 만다.
그래서 역시 여자가 세상에 존재해서 좋다는 생각이든다. 남자만의 논리로 이 세상을 살아
간다면 모든것이 숨막히고 답답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이치만 내세우는 논리의 허점
을 깨버릴 수 있는 것이 여자들의 톡톡 튀는 팝콘 논리인것이다.
여자는 역시 멋진 존재다.



엔도 슈사쿠(遠藤周作) 소설가, 작가
출생-사망 1923년 3월 27일 (일본) - 1996년 9월 29일
학력-게이오대학교 불문학 학사
데뷔
1947년 수필 '신들과 신과' 수상
1995년 문화훈장
1980년 제33회 노마 문예상
1979년 제30회 요미우리 문학상 평론전기상
1966년 제2회 다니자키 준이치로상






Posted by 마기 트랙백 0 :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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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사메 2009.12.19 16:21 신고

    합리적 비합리적인 사람이 있을뿐
    그것이 성별의 차이는 아닌듯..

  2.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rince 2009.12.19 18:52

    아, 일정 공감되며...
    재미난 글이네요 ^^;

  3.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하꾸 2009.12.19 22:49 신고

    작문하신줄 알았음.....;;;;;;;ㅋㅋㅋㅋ

  4.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tmrw 2009.12.20 13:08

    그런 여자들 앞에서 씩 한번 웃어주는 남자들은 참 멋있죠 ㅋ

  5.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친절한민수씨 2009.12.23 14:21

    결혼도 안했는데 왜 이리 동감이 가죠? ㅋ

  6.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한줌 2009.12.24 16:48 신고

    저 혼자 툴툴대며 부정하고 살지만 결국 눈치 보고, 고개 숙입니다.
    여자는 필요한 상전이십니다.

  7.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rince 2009.12.25 10:54 신고

    마기님, 즐거운 성탄되세요!~~

  8.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미미씨 2009.12.25 21:52 신고

    음...역시 마기님은 심오해..ㅋㅋ
    여자들이 전혀 저렇지 않다고 우기진 못하겠지만 어찌보면 때론 남자들이 여자들의 논리에 말리는건 저도 동감해요.
    아직은 그래도 크리스마스라고 우기며 메리 크리스마스 외치고 가요.
    전 여전히 아홉수의 우울한 연말을 노동으로 버티고 있어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