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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stav Klimt - 희망1

2012. 4. 14. 15:55 from 月光讀書

 

 

                                                                                          희망1 / 1903년, 캔버스에 유채 / 189X67 / 캐나다 오타와 미술관

 

미나의 적황색 머리카락은 허리께로 치렁치렁 늘어져 있다. 그 빛깔은 구스타프의 꿈속까지 흘러넘친다. 그렇게 아름다운것은 본 적이 없다. 그는 그 머리카락을 그릴 때면 적갈색이나 황갈색을 섞지 않고 꼭두서니 뿌리즙만 쓴다.  길에서 리본으로 묶어 얌전한 머리장식 아래 숨기고 있을때도, 그것은 횃불처럼 발한다. 아무리 숨기고 싶어도 숨길수가 없다. 어떤이의 죽음으로 그녀가 결국 머리카락을 지킬수 없었다는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머리카락은 일단 뿌리에서 잘려나가면 어쩔 수 없이 제 빛을 잃는다.

구스타프는 뼈가 여기저기 튀어나온 그녀의 앙상한 몸매에도 매혹되었다. 엉덩이를 감싼 근육이 눈에 보일 정도다. 광대뼈는 알프스산맥의 조상이 썼을법한 창의 촉 같다. 그녀는 스무살이 넘어 보였다. 임신한 상태여서 전보다 더 핏기가 없고 눈 밑에는 푸른 그늘이 졌다. 배는 이미 꽤 불러와서 마치 배만 남의 몸에서 따온것처럼 불룩 튀어나와 있다. 그 배를 하고 다니기가 버거워 보인다. 구스타프의 눈에는 그녀의 해쓱한 몰골, 점점 더 커져가는 자궁, 부서질듯한 연약함 등 극한까지 치달은 그녀의 모습 하나하나가 예전의 어느 때보다 아름다워 보인다. 그녀의 몸은 더이상 버티기 힘든 지경까지 왔다. 가끔 출혈을 보인다. 따뜻한 침대에 꼼짝 말고 누워 간호사가 날라다주는 수프와 약을 먹어야 할 형편이지만 꿈도 꿀수 없는 일이다. 그녀는 부모의 집에서 쫒겨났고, 구스타프가 주는 것 말고는 수입이 전혀없다. 일할 형편이 아닌 줄은 알지만, 그녀에게 돈을 주려면 계속 일을 시켜야만 하는 난처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다. 그녀는 절대 동정은 받지 않겠다고 말한다.

그는 미나가 품은 아이의 아비가 아니다. 미나가 그렇게 말했고, 그녀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다른 여자 같았으면 거짓말도 모자라 머릿속에서 이리저리 계산을 굴리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을 것이다. 그들은 서로를, 자기들이 태어난 곳의 냉혹한 현실을 잘 알고 있다. 그는 그것을 등질 테지만 그녀는 영영 빠져나오지 못하리라는것을 둘은 알고 있다. 그래도 그녀는 그를 시샘하지 않는다. 원래 세상이 다 그런건데, 수선 떨 게 뭐람? 그는 일거리를 준다. 둘은 친구 사이다.

미나는 방 한가운데의  단 위로 올라가 푸른 실내복을 바닥에 떨어뜨린다. 구스타프가 단 위에 갖다 놓은 의자에 앉는다. 다리를 벌렸다가 오므린다. 의자 위로 두 다리를 올리고 공처럼 몸을 둥글게 구부린다. 한쪽 다리를 깔고 앉는다. 자세를 바꾼다. 그녀는 그가 좋아하는 동작과 포즈를 안다. 다른 화가들은 예쁘고 균형 잡힌 것을 좋아하지만, 그는 꼴사납다 못해 추한것을 더 좋아한다. 임신 칠 개월이라면 꼴사납고 추한 몰골을 만드는거야 일도 아니다.

"괜찮아?"

잠시 후 그가 묻는다.화실은 온기라고는 찾으려야 찾을수가 없다. 그녀는 가끔 한 번씩 몸을 부르르 떤다. 오소소 돋은 팔의 솜털이 빛을 받아 반짝인다. 그는 그녀가 단 위에서 기절하거나 송판위에 피를 쏟아내며 아이를 밀어내지나 않을까 걱정스럽다. 구스타프는 그녀가 죽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까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괜찮아요." 

그녀가 말하고 곧 자세를 바꾼다.

"오늘 아직 아무것도 못 먹었지?"

"뭐든 먹으면 다 토해버려요."

"잠은 어디에서 자나?"

"어디일 것 같아요?"

그녀가 그에게 씩 웃어 보인다.

"우리 친구 바흐만 씨는 요즘 어떠신가?"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예요. 내가 임신했다는 소문이 퍼져서 괜찮은 신붓감을 못 구하게 될까봐서요."

구스타프는 그녀에게 좀 쉬면서 차도 마시고 롤빵도 먹으라고 이른다. 그가 말하지 않으면 그녀는 몇시간이라도 그 자세로 있을 것이다. 그녀가 부엍에 있는 동안, 그는 지금까지 그린 스케치에 음영을 넣거나 지우면서 다듬는데 정신을 쏟는다.

"내가 그만 오기를 바란다면 그렇게 할게요. 이해할게요." 

그녀가 롤빵 하나는 손에 들고, 하나는 입에 물고 들어오면서 말한다. 

임신한 모델은 도덕적인 비난의 뜻에서, 혹은 단지 더 이상 쓸모가 없다는 이유로 해고당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들의 육체는 화폭에 모습을 드러낼 수 없다.

"바보 같은 소리 마. 난 네가 필요해. 여기에서 누구랑 마주쳤어?"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눈만 들어 그를 힐끗 보았다가 잠깐이지만 수줍은 어린아이처럼 다시 눈길을 떨어뜨렸다.

"내 꼴이 서커스에 나오는 뚱보 여인 같아요."

"네 초상화를 그리기로 결심했어. 흥미가 좀 당겨? 희망에 대한 일종의 비유랄까."  

미나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그를 바라본다. 가끔 그의 머릿속에 뭐가 들었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내 초상화를 그린다니 말도 안돼요. 미쳤어요?"

희망. 그녀의 삶에는 희망이라고는 티끌만큼도 없는데 어떻게 그녀가 희망을 상징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녀는 아이를 낳을 것이다. 운이 좋으면 산고에서 살아 남을지도 모른다. 바흐만은 그녀와 결혼해 주지 않을 테고, 부모님도 그녀를 다시 받아주지 않을 것이다. 그녀의 외모도 고된 삶에 지쳐 일찍 시들 것이다. 그럼 무얼 해야 하나? 공장에 취직 할까?  몸을 팔아야 하나? 그리고 아이는 어떻게 될까? 말없이 아들이기만을 기도한다.

"혼자 모델을 서주는 시간을 더 늘려야겠는데, 배가 더 불러 올것 같아?"

"더 부르냐고요? 물론이죠. 자꾸만 더 커질 거예요. 곧 이 화실보다도 커질걸요."

미나의 목소리에는 냉소와 회의가 배어있다.

구스타프는 손으로 그녀의 팔을 쓸어준다.

"그건 상관없어. 괜찮다면 한동안 여기에서 지내도 좋아."

"머무는곳이 있다고 말했잖아요."

그녀가 꺼리는 것은 섹스가 아니라 호의를 베풀겠다는 제안이었다.

"무슨일이 생기면 말이야."

그가 말한다. 그는 그녀의 어깨에서 옷을 끌어내린다. 가슴이 부풀어 있다.

"당신이 정말로 나를 그리고 싶다면 일을 하겠어요. 하지만 여기에 머물 것까지는 없어요."

구스타프는 어머니에게 철야작업을 할 거라고 전보를 친다. 어머니는 그가 집에 오지 않으면 불안해한다.

그가 돌아왔을 때 미나는 깃털 이불 하나는 밑에 깔고, 하나는 몸위에 덮고 긴 의자 위에 몸을 쭉 펴고 누워있다. 그를 유혹하려는 것인지 아닌지 잘 알수가 없다. 그가 옆에 눕자 그녀는 투덜대며 몸을 뒤척인다. 그가 그녀의 몸 위에 걸터앉아 더는 부드럽고 말랑말랑하지 않은 배를 누른다. 그녀의 피부 밑 두터운 보호막이 그의 무게로부터 태아를 지켜주고 있다. 그 생각에 그는 흥분이 고조되어 더 세게 몸을 밀어 붙인다. 미나가 움찔한다.

"애 잡겠어요."

그러더니 잠시 후 귀에 거슬리는 거친 숨을 몇 차례 들이쉬며 말한다.

"어쩌면 그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겠지."

잠시 후, 그는 그녀의 배꼽에 대고 부글대는 소리, 콸콸대는 소리를 듣는다. 

"아기는 괜찮아. 운동을 좋아하는데"

구스타프가 말한다.

"유감이군요."

미나는 옆으로 몸을 웅크린다. 곧 숨소리가 다르게 들려온다. 잠이 든 것이다. 구스타프는 난로에 장작을 더 넣고 집으로 향한다.

 

                                                                                                             - 클림트 중 (엘리자베스 히키 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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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바람노래 2012.04.20 14:18 신고

    저게 희망일까 과연 절망일까 싶기도 합니다...후

  2.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마기 2012.04.23 08:40 신고

    그렇쵸..아주 씁쓸한 희망.